본문 바로가기
조선시대 범죄 사건

조선시대에도 존재한 인신매매 사건

by clover-story 2025. 4. 11.

조선 유교 사회의 이면, 인신매매는 분명히 존재했다

조선시대는 유교적 가치관이 사회 전반을 지배하던 시기였다. 효와 충, 예와 같은 도덕적 규범이 사회 전반에 스며들어 있었으며, 가족과 공동체 중심의 질서가 무엇보다 강조되었다. 그러나 조선이 이상적으로 추구하던 유교적 질서는 실제 사회 현장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인 범죄 중 하나가 바로 인신매매였다. 실록에는 자주 등장하지 않지만, 승정원일기와 지방 수령의 보고 기록, 고문서 등을 통해 보면 사람이 상품처럼 사고팔리던 현실이 분명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조선의 신분제 구조 속에서 여성, 아이, 노비 등 약자들은 법적으로도 보호받기 어려웠기 때문에 범죄의 표적이 되기 쉬웠다. 인신매매는 단순히 납치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회적으로 ‘사람’을 ‘재산’으로 간주하던 사고방식이 있었기 때문에, 하층민이 거래되는 것을 도덕적으로 문제삼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았다. 실제로 어떤 기록에는 “어린 계집아이를 은 세 냥에 팔았다는 고변이 있었고, 장터에서 이 아이를 본 자가 여럿이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처럼 조선시대 인신매매는 단지 개인의 일탈이 아닌, 시스템 속에 숨어 있는 구조적 범죄였다.

 

조선시대에도 존재한 인신매매 사건

 

피해자는 누구였는가: 여성, 아이, 그리고 신분 낮은 자들

조선시대 인신매매는 그 대상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었다. 범죄자들은 자신들의 범행에 가장 적합한 조건을 갖춘 사람들을 노렸다. 바로 사회적 약자 계층이었다. 우선 어린 아이들, 특히 부모가 없는 고아나 가난한 집안의 자녀들은 보호 장치가 없기 때문에 가장 먼저 표적이 되었다. 장날이나 제사 등으로 마을 사람들이 모두 외출한 사이, 아이가 집에 혼자 남아 있는 경우 낯선 사람이 접근해 데려가는 일이 잦았다. 범인들은 “서울로 데려가 공부를 시키겠다”거나 “양자로 삼겠다”는 말을 하며 아이들을 유혹했고, 이후에는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노비로 팔아넘겼다. 여성의 경우는 더 심각했다. 젊고 건강한 여성은 주로 기생양성소나 기방, 혹은 양반가의 노비로 팔려갔다. 노비 신분이 아니더라도, 납치된 여성이 거짓 노비 문서를 쓰게 된 뒤 거래되는 사례도 있었다. 일부는 양반가 남성의 사적인 소유처럼 취급되었으며, 성적 착취를 당한 뒤에야 탈출하는 경우도 드물게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돌아오지 못했다. 부모가 자식을 찾아 헤매도, 지역 사회는 ‘어디 팔려갔겠지’라는 반응만 보였다. 이러한 무관심과 인권 감수성 부족이 인신매매를 더욱 쉽게 만든 요인이었다.

 

인신매매에 대한 조정의 대응과 법 집행의 실상

조선 정부는 형식적으로는 인신매매를 명백한 범죄로 간주했다. 형조의 법전에는 사람을 불법적으로 사고파는 행위에 대해 장형, 도형, 유형, 참형 등으로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마련되어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법이 적용되는 방식은 피해자의 신분, 가해자의 계급, 그리고 지역 사회의 반응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예를 들어, 양반가의 자녀가 유괴되었을 경우에는 형조가 즉시 개입하고 포도청 수사관이 파견되어 철저한 수사가 이뤄졌다. 그러나 납치된 사람이 평민이나 노비일 경우에는 지방 수령이 “가족 간 거래일 수도 있다”, “가출 가능성도 있다”는 식으로 사건을 축소하거나 무마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일부 수령은 지역 유지나 양반 계층의 비호 아래 범죄를 덮기도 했다. 수사가 진행되어 범인이 잡혔더라도, 피해자의 신분이 낮으면 형량은 낮아지고, 재판은 느슨하게 진행되었다. 오히려 피해자에게 불리한 상황이 벌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어 기생으로 팔려간 여성이 도망쳐 고변하자 “기방을 자발적으로 찾은 것”이라는 말이 채택되어 오히려 죄를 뒤집어쓴 사례가 있다. 이처럼 조선의 법 체계는 존재했지만, 그것이 실질적으로 약자를 위한 보호 장치로 작동한 적은 거의 없었다.

 

조선 인신매매의 교훈, 지금 우리가 배워야 할 것

조선시대 인신매매 사건은 단순한 과거의 비극으로 치부할 수 없다. 그것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구조적 폭력’의 원형을 제공하는 중요한 역사적 사례다. 당시 사람들은 사회 구조 속에서 타인의 인권을 짓밟았고, 그 피해는 특정 계층에 집중되었다. 오늘날 국제사회는 아동 납치, 여성 유괴, 인신매매를 엄격히 금지하며, 이를 막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왔다. 그러나 아직도 개발도상국이나 전쟁 지역에서는 유사한 범죄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인신매매 사건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정말 모든 사람의 존엄을 지키고 있는가?” 법이 존재한다고 해도, 그것이 실제로 작동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조선의 법은 약자를 보호하지 못했고, 그 결과 수많은 이들이 이름 없이 사라졌다. 우리는 그들의 고통을 단순한 ‘역사’로 넘길 수 없다. 인신매매는 인간의 존엄을 부정하는 가장 잔혹한 범죄이며, 그 역사를 되짚는 일은 단순한 학문적 탐구가 아니라,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윤리를 점검하는 일이다. 조선에서 침묵한 목소리를 이제는 우리가 대신 기록하고, 기억하고, 나누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이 콘텐츠의 존재 이유이며, 너의 애드센스 사이트가 전해야 할 진짜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