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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졸이 증인을 협박하다, 조선 사법의 민낯 조선 포도청의 수사 방식, 정의였을까 권력이었을까조선시대의 포도청은 현재의 경찰청이나 검찰청에 해당하는 기관으로, 도성을 중심으로 한 치안 유지와 범죄 수사, 재판 전 피의자 심문까지 담당했던 핵심 기구였습니다. 하지만 권한이 큰 만큼, 그 안에서 벌어지는 비리와 부조리도 빈번하게 발생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오늘 이야기할 포졸이 증인을 협박해 허위 진술을 유도한 실화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조선 후기, 숙종 33년(1707년)경 경기도 광주 지역에서 실제 발생한 사례로,『승정원일기』와 형조 문서에 단편적으로 기록이 남아 있으며, 당시 중앙 조정에서도 “사법 절차의 정당성 훼손”이라는 비판이 나왔던 중대한 사건이었습니다. 사건의 시작은 단순한 토지 분쟁이었습니다. 두 양반 가문이 오래된 경계선을 두.. 2025. 4. 22.
사또의 사치로 굶주린 마을, 백성의 고발은 받아들여졌을까 탐관오리의 사치, 가난한 고을엔 겨울조차 사치였다조선 영조 9년(1733년), 전라도 정읍에서 벌어진 한 사건은 당시 조정과 형조에 보고되며 전국적인 이슈가 되었습니다. 한 마을의 수령, 즉 사또가 사치와 향락에 빠져 공공 자금을 유용하고, 그 여파로 수개월 동안 백성들이 굶주림에 시달리는 일이 실제로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은 『비변사등록』과 『승정원일기』에 일부 기록이 남아 있으며, 당시 백성들의 집단 고발과 탄원이라는 이례적인 대응으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정읍 현감이던 조선 관료 장윤석은 중앙에서 고위 관직 경력이 없던 지방 관리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부임하자마자 마을의 곡식 창고를 사적으로 사용하고, 관청의 쌀과 세곡을 빼돌려 자신의 사저에서 연회와 사냥, 개인 사치를 위한 창고로 .. 2025. 4. 22.
조혼을 거부한 딸을 때려 죽인 아버지, 조선의 가족법은 ‘효녀’가 아닌 ‘불효자’가 된 딸, 죽음으로 끝난 거절조선 중기, 경상도 진주의 한 양반 가문에서 벌어진 한 사건은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조차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자신의 친딸을 조혼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폭행하여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조선 후기의 『승정원일기』에 실린 이 사건은 단순한 가정폭력이 아니라, 당시 조선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가족’, ‘효’, 그리고 ‘여성의 권리’를 왜곡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당시 피해자인 딸 윤씨는 겨우 열세 살에 불과했으며, 아버지 윤모는 지역에서 꽤 이름난 중간 양반 출신으로 집안 체면을 중시하며 ‘일찍 혼인시켜야 여자 구실을 한다’는 소위 전통적.. 2025. 4. 21.
장례 중 일어난 강간 사건, 조선은 어떻게 판결했나 슬픔 속에서 벌어진 참혹한 범죄조선 후기인 순조 9년(1809년), 경상도 밀양에서 발생한 한 사건은 당시 지역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양반가의 장례식 도중, 상복을 입은 친족 여성에게 강간 범죄가 자행되었기 때문입니다. 장례식은 조선 유교 사회에서 가장 신성하게 여겨지는 의례 중 하나로, 가문의 명예와 체면이 집약된 중요한 행위였습니다. 하지만 이 신성한 공간에서 범죄가 발생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성범죄를 넘어서 ‘가문 전체의 수치’로 인식되었고, 피해자와 그 가족은 사회적 낙인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사건의 가해자는 사망자의 먼 일가 친척으로, 장례 당일 밤 빈소 주변의 행랑채에서 상주 역할을 하던 17세 여성을 대상으로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여성은 상복을 입은 채 슬픔에 잠겨 있었고, 주변은 깊은.. 2025. 4. 21.
재산을 노리고 아버지를 독살한 아들, 조선의 패륜 범죄 판결 조선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패륜 독살 사건조선 숙종 27년(1701년), 충청도 서산에서 발생한 한 패륜 범죄 사건이 조정에 보고되며 전국이 충격에 빠졌습니다. 한 양반가에서 장남이 아버지를 재산을 노리고 독살했다는 이 사건은 단순한 가정 내 불화가 아니라, 조선 유교 사회 전체의 근간을 뒤흔드는 범죄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피해자는 60대 후반의 김 모 씨였으며, 가해자는 그의 친아들인 김익환(가명), 당시 30대 중반으로 집안의 후계자이자 가장 신뢰받는 자식으로 알려졌던 인물이었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평소와 다르지 않은 저녁 식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김익환은 부친의 저녁상에 직접 마련한 술을 올렸고, 식사 도중 부친이 급작스럽게 구토와 혼절 증세를 보인 뒤 이틀 만에 숨졌습니다. 처음엔 지병으로 인한 급.. 2025. 4. 21.
죄수와 감옥 간수의 유착, 조선 감옥의 실태 조선의 감옥은 단지 구금의 공간이 아니었습니다조선시대의 감옥은 지금처럼 인권 보호와 교정을 목적으로 한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당시의 감옥은 '옥사(獄舍)'라 불리며, 죄인을 단순히 가두고 처벌을 기다리는 임시 공간이었습니다. 특히 포도청에서 운영하던 서울 지역의 옥사는 위생 상태가 매우 열악했고, 온갖 부패가 만연해 있었습니다. 감옥 내 권력은 명목상 간수에게 있었지만, 실제로는 내부에서 죄수들 간의 서열과 간수와의 유착 구조가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 밝혀지며 조정에도 큰 충격을 안긴 바 있습니다. 감옥에 수감된 죄수들은 기본적인 식사조차 가족이나 지인의 외부 배달에 의존해야 했고, 감옥 간수는 이를 통제하거나 허용해주는 대가로 금전적 이익을 취하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특정 죄수는 상급 간수와의 유착을 .. 2025. 4. 19.